남해 촌에서 태어난 가난한 소년의 남다른 열정으로 이룬 성공과 또 다른 도전
사람은 겉만 봐선 알 수 없다란 말처럼 김의원에게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첫 인상과 달리 김의원은 춥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국전쟁 직후 어려운 삶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만, 김의원은 유독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듯 하다.
1955년 남해군 상주면 금전리에서 고(故)김용상·문서분 부부의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의원은 어린 시절 밥을 빌어 먹어야 할 정도로 찟어지게 가난했다.
그로 인해 위의 누나 둘을 기아로 잃어야 했고 두 형들은 초등학교만 겨우 나올 수 있었다.
그런 힘든 와중에도 김의원은 국민학교 도서실에 있는 책들을 모두 빌려 읽었을만큼 공부에 남 다른 열정이 있었다.
어쩌면 부모님들께 늘 막내가 집안을 일으킬 것이라는 현몽을 꾸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형편은 그런 공부에 대한 열정을 뒷받침 해 줄 수가 없었다. 국민학교 졸업 후 중학교 시험을 본 것도 소원이나 들어 주자는 심정으로 시험이나 한번 보라고 한 것이었는데, 김의원은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상주 중학교 졸업 후 안된다는 부모님들께 떼를 쓰다 시피 하여 경남 공고에 입학 하게 되었다.
입학 전날 술에 취한 형은 김의원의 책을 모두 찟고 눈두덩에 퍼렇게 멍이 들도록 때렸다.
집을 떠나는 동생에게 작은 형은 당부의 말을 했지만, 기억 나는 것은 잘 다녀 오란 말 뿐이었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친 김의원은 영남대 행정학과로 진학을 하게 된다. 취업이나 하라는 부모의 반대도 그의 열정을 꺽을 수는 없었다.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김의원은 1981년 서울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마친 뒤 1982년 행정고시를 통과해 공무원의 길로 접어 들게 된다.
남해 촌에서 태어난 가난한 소년의 남다른 열정은 이렇게 첫 출발을 맞게 된 것이었다.
김의원이 1989년 국비 장학생으로 하와이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 되며 오랜 군사정권이 민간 정부로 이양 되게 된 것이다.
마침 정치학 박사 과정을 마친 김의원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주제로 한 논문을 써 박사 학위를 받게 되는데, 그가 전두환 정부부터 노태우 정부를 거쳐, 김영삼 정부까지 10년간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근무 하며 직접 몸으로 보고 느꼈던 정부의 이양 과정이 논문을 쓰는데 많은도움이 되었다고 그는 회고 하였다.
하지만 공무원으로써의 그의 관심사는 늘 문화 쪽에 있을 수 밖에 없던 것이 1981년 처음 공직 생활을 시작한 곳도 문공부였으며,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재직 했던 10년간을 제외 하고는 쭉 문화부에서 일 했던 문화통으로, 문화관광부 예술국장, 문화관광부 종무실장,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등 문화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의원자신도 문화 예술 분야에 지대한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있어서 종무실장 시절엔 종교 콘텐츠들의 문화 상품화를 추진 했는가 하면, 제1차관 시절에도 각종 문화 콘텐츠들을 개발 육성 하는데 남다른 열의를 보였고, 정부는 이런 그에게 1998년에는 홍조근정훈장을, 2000년에는 행정자치부장관상을 수여 하기도 했다.
문화부 제1 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 난 그는 오랜 문화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 하게 된다.
어쩌면 그에겐 이 때부터가 또 다른 출발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문화부 차관 시절에도 강의를 가거나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자청해 노래를 부르곤 하고, “대중가요의 정치 사회학”이란 책을 쓰기도 했던 김의원의 노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여서, 예술의전당 사장 재임 시절에도 노래 하는 사장님으로 알려져 있었는가 하면, 한국 국회의원으론 최초로 카네기홀에 서기도 했다.
평소에도 트로트 가요를 좋아해 70년대까지의 트로트는 줄줄이 꿰고 있다고 하는 그는 “대중가요는 그 시대를 구현 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런 김의원에게 예술의전당 사장직은 딱 알맞는 자리가 아니였었나 생각이 된다.
예술의전당 사장 재임 중 그는 해방 60년 경술국치 100년등 여러가지 역사 문제와 관련 된 행사를 추진 했고,, 브람스, 베토벤, 바흐를 집중 조명 하는 3B 씨리즈를 준비 하기도 했으며, 자체 공연의 비율을 높여 기획 공연과 대관 공연이 경쟁 하며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 하여 맡은 분야는 안전행정이었다.
오랜 기간 예술 분야에 있어 왔던 본 기자에겐 다소 아쉬운 부분으로 보여지기는 하나, 그가 초선 의원이란 점을 감안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라는 추측을 나름대로 해 본다.
이제 해가 바뀌면 그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발을 내디딜 것이라고 한다.
긴 세월 우리나라 문화 예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던 그의 발걸음이 멈춰지지 않아, 한국 예술을 떠받히는 큰 주춧돌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끊임 없는 그의 도전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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